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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말보다 손끝으로 전하는 이야기
꼬르륵. 그가 동생을 기다린 지 2시간이 지났다. 약속 장소에 너무 일찍 도착한 탓도 있지만, 점심 식사를 일찍 했던 것도 한몫을 했다. 기록적인 무더위 덕분에 주말의 휴게실은 무척 한가로웠다. 약속 시간까지는 얼마남지 않았지만, 눈앞의 편의점에 들어가서 무엇이든 사먹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빨리 가자!" 배고픔을 참기 힘들었던 현수는 동생을 보자마자 휴계실 밖으로 이끌었다. 오늘은 동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사실 생일 축하는 핑곗거리였고,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식을 듣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 "너 오기 전에 내가 찾아보니까 벌집 삼겹살이 벌집 모양으로 칼집을 낸 거라서 그렇게 부르는 거래. 웃기지 않아? 큭큭." "맞아. 내가 삼겹살을 별로..
[단편소설] 고들 옹 (1) [단편소설] 고들 옹 (2) [단편소설] 고들 옹 (3) 결승전 경기의 진행은 세트별 15점을 먼저 취득하는 선수가 승점을 가져가며, 3세트를 먼저 이긴 선수가 최종적으로 우승하게 된다. 고들 옹의 결승전 상대는 일본의 쿠모모(kumomo) 선수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거미처럼 상대방을 자신의 실력으로 주무르며 서서히 지치게 만들어 승점을 따내는 경기운영을 보여준다. 이와 반대로 고들 옹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부드러운 샷으로 난구를 풀어내는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각자의 개성은 다르지만 누가 우승을 차지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결승전 경기는 전 세계 당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고들 옹은 경기 시작을 앞두고 카메라 앞에서 쿠모모(kumomo) ..
[단편소설] 고들 옹 (1) [단편소설] 고들 옹 (2)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기도 했고, 고들 옹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생일잔치는 끝을 맺었다. 모두가 돌아간 뒤 고들 옹은 다시 상자를 열어 쿠드롱의 당구채를 살펴보았다. 조금 전에 기절하면서 바닥에 떨어뜨렸으니 조그만 흠집이라도 생겼을 법했지만 당구채는 멀쩡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당구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요즘 들어서 당구에 대한 열정이 식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쿠드롱의 당구채 덕분에 의욕이 샘솟는 것 같았다. 고들 옹은 이대로 잠들기는 아쉽다고 생각했다.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이었지만, 쿠드롱의 당구채를 들고 개인 당구 연습장으로 향했다. 고들 옹은 그날부터 당구 연습장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매 끼니를 당구 연습장에서 ..
[단편소설] 고들 옹 (1) "이게 뭐지? 누가 보낸 거야?"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누가 보냈을지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봉쥬르곰씨(bonjourgomc)가 보낸 선물은 아닐까? 오늘 참석 못 했으니까 선물만 보냈을 수도 있잖아." "맞아. 그런 거겠지. 굳이 퀵 서비스까지 이용해서 보낸 걸 보면 맞는 것 같은데?" "뭔지 궁금하다! 빨리 열어 봐." "그래도 보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위험한 물건일 수도 있잖아?" 의문의 상자를 두고 각자 의견을 내면서 분위기는 소란스러워졌다. "음.... 일단 나한테 온 물건이니까. 내가 열어 볼게." "그거 자물쇠로 잠겨 있는데?" 상자의 자물쇠는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고들 옹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일..
2038년 7월 27일. 고들 옹의 나이는 만 48세가 되었다. 그녀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스티미언(Steemian)이 모이기로 했다. 2018년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던 그 날, 고들 옹은 돌연 전 재산으로 스팀 파워(STEEM POWER)를 구매하며 전업 스티미언이 된 것을 선언했다. 행운의 여신이 그녀를 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윽고 스팀(STEEM)의 시세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시세가 안정된 현재 1 스팀은 원화 가치 1,500만 원에 이르렀다. 덕분에 그녀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2030년 스팀잇(Steemit)은 다음 세대 SNS에 자리를 내어주면서 사라졌지만, 스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DAPP들이 성공을 거두면서 스팀의 가치는 전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나는 수박이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덥다. 아무리 내가 일광욕을 즐긴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은 날씨다. 이렇게 더위에 지치는 날에는 (수박)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다. 이럴 때는 이파리 밑에 숨어서 수박밭 주인이 준 특제 비료를 먹는 것이 최고다. "어머, 언니 요즘 검은색 줄무늬가 많이 진해진 것 같은데 비법이라도 있어요?" "호호호. 비법이랄게 뭐 있겠니? 그저 일광욕 열심히 하고, 비료 꼬박꼬박 챙겨 먹는 거지." "너무 부럽다! 나는 언제쯤이면 언니처럼 동글동글한 몸매에 선명한 줄무늬를 갖게 될까요?" "너도 크면 다 이렇게 될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 후훗." "히잉. 정말이죠?" 아직 연두색에 희미한 줄무늬를 가진 녀석이 내 미모를 부러워하며 불평을 한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
[단편소설] 아재리그 (1) [단편소설] 아재리그 (2) [단편소설] 아재리그 (3) (완결)※ 이 글은 위의 소설을 읽으신 분을 위한 글입니다. 결말을 포함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으니 먼저 소설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금손이 되고 싶은 한손(@onehand)입니다. 즉흥적으로 작성하기 시작했던 단편소설 '아재리그'가 3회를 끝으로 완결되었습니다. 처음에는 A4용지 2장 분량의 콩트를 쓰려고 했었습니다. 특정 독자층을 위한 글쓰기 연습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격하게 좋아해주시는 몇몇 댓글을 읽고나니 분량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上, 下로 마무리 하려고 했던 것이 上, 中, 下로 마무리 되면서 계획했던 것보다 분량이 50% 정도 증가했습니다. (지금은 1, 2, 3 회로 제목..
[단편소설] 아재리그 (1) [단편소설] 아재리그 (2) 찌직. 뽁! 꿀렁꿀렁. 꿀꺽.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캔맥주 호구든의 뚜껑을 따고 조금 마셨다. PC방에 몰래 가져와서 그런지 더 맛있다. 나머지는 경기가 끝난 이후에 마시려고 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어 오리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는 호구든의 탄산가스가 다 빠져버리기 전에 돌아올 것이다. 칼부림저그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마! 5판 3선승제의 아재리그. 일정 이상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경기를 시작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승패가 결정된다. 한 번의 실수가 곧장 승패를 좌우하다 보니 100%에 가까운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경기는 빠르게 진행되어 어느새 2승 2패. 이제 마지막 경기만 남았다. “정말 긴장의 끈을..
[단편소설] 아재리그 (1) 자신을 ‘젤나가’ 종족이라고 소개한 그것은 빛이 사그라지더니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프로토스는 자신들이 진화시킨 종족이라며, 약점을 알고 있으니 원한다면 결승전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스토리 설정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게 진짜로 있는 이야기였던 걸까? “하하…. 이거 너무 믿기 힘든 상황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런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게 해준다는 거야?” “당신은 나와 계약을 맺으면 됩니다. 계약이 성사됨과 동시에 ‘젤나가의 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을 승리의 순간으로 이끌 것입니다.” “계약이라고? 그러면 조건이 있을 텐데?” “조건은 매우 간단합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 테란 종족의 스파..
나는 아재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금세 아재가 되어버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군복무를 하면서 처음으로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진짜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당시에 답답한 내무반(생활관) 생활 속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를 보는 것이었다. 분대원과 외박을 나가면 스타크래프트 팀전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전역 이후에도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인기는 여전해서 한때는 프로게이머를 해보려는 생각도 해봤었다. 대학교에 복학하고 나서도 틈만 나면 PC방에 들려서 스타크래프트를 했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동맹을 맺고 게임을 하다 보면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다음 날 오전 강의시간은 자연스럽게 취침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학업보다 스타크래프트를 우선시하..